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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8-25 16:41
맘 놓고 광고주 불매운동 벌이는 미국은 난장판?
 글쓴이 : 민소리 (123.♡.7.9)
조회 : 1,376  

  
7월 16일 오후 3시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 19층에서 60여 명의 현업 기자, PD들이 MBC 에 대한 최종 심의와 KBS <뉴스9>의 KBS 특별감사 보도에 대한 제재 수위 결정이 예정됐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장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경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 달간 지켜본 이명박 집권 후 한국사회

 

지난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한국에 다녀왔다. 목적은 단순했다. 미디어학자로서 휴대폰과 무선인터넷이 한국의 시민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 촛불시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고, 시위대 속에서 직접 느낀 점을 여러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도 있었다.

 

한국에서 머물렀던 한 달 사이, 참으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많은 사건은 오직 한 가지 문제를 둘러싼 것이었다. 바로 안전성 논란이 많았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다.

 

거의 매일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고, 쇠고기 위험을 '과장보도'했다는 이유로 한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이 검찰에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았으며, 광고주 불매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시민들이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다.

 

한국의 검찰이야, 군사독재시절부터 경찰과 더불어 '정권사수대'를 자임해 온 조직이니 '하던 일'을 계속한다고 치자. 언론학자로서 정말 놀라웠던 것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의 개입이었다.

 

민주주의 언론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만 있어도, 한국의 현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거방송도 아니고, 사적인 명예훼손과도 무관한 사안을 국가기구가 나서서 '공정성'을 심의한다는 것이 언론학을 공부한 사람의 상식으로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심의위원들의 약력을 살펴보던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이들 가운데 다수가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에 강단에서 '표현의 자유'에 관해 어떤 강의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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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오후 2시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 PD수첩 > 표적수사 정치검찰 규탄대회'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PD수첩

한국정부가 준 가르침 : 미국은 불법천지?

 

한국에서 보낸 한 달 동안 두 가지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는 한국사회가 건강한 개혁의지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사는 미국이 얼마나 '난장판'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가르침은 각기 다른 곳에서 왔는데, 첫 번째 사실을 일깨워준 것은 시민들이었고, 두 번째 교훈을 준 것은 (검찰, 경찰, 방통심의위를 포함한) 한국 정부였다.

 

방통심의위는 인터넷에 불매운동 대상 기업명과 연락처만 올린 글에 대해서조차 '삭제' 결정을 내렸다. 매체의 광고중단운동 자체를 위법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방통심의위의 이런 의결 과정에는 한 위원이 주장한 '미국판례'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에서는 광고주를 압박하는 식의 불매운동, 즉 '2차 보이콧'이 '불법'이라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검찰 역시 인터넷에 불매 대상 광고주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올린 시민들을 조사하면서 수사 및 처벌의 법적 근거를 찾지 못하자, '미국판례'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굳이 미국판례를 고집할 필요가 있었을까? 동서고금의 법률을 잘 찾아보면 '출국금지' 정도가 아니라, '왕에게 대든' 대역죄로 삼대를 멸하는 벌도 가능할 텐데 말이다.   

 

대단한 정부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때문에 발생한 일이니, 처벌 근거도 '미국산'을 수입하기로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미국에는 그런 처벌규정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미국의 시민단체로부터 한 주에도 수십 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그 가운데 다수는 저임금, 성차별, 인종차별, 동물학대 등의 이유로 불매운동을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기업의 이름과 대표전화번호는 물론, 해당 기업에서 일하는 주요 인사들의 이름과 직통전화번호까지 담겨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론사의 보도에 항의해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이메일도 심심치 않게 받는다. 메일 내용에 광고기업들의 이름, 경영진 이름과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가 들어있는 것은 기본이다. 정책에 항의해 정치인에게 전화를 걸자는 메일도 흔하다. 한 번은 정치인들에 의한 '공영방송 죽이기'를 막아달라는 언론개혁 시민단체 '프리프레스(freepres.net)'의 연락을 받고 메일에 적힌 번호를 눌러 상원의원에게 항의전화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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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 시민단체인 <프리프레스>에서 보내온 메일 내용. 부시행정부에 맞서 공영방송을 지키자는 안내와 함께 전화할 정치인 이름과 전화번화가 수록되어 있다.
ⓒ Free Press
언론 자유

 

걸핏하면 '미국식' 주장하더니

 

기업이나 정치인에게 항의전화를 하고, 이메일이나 웹사이트 게시판을 통해 서명을 하거나 항의용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것은 미국에서 일상의 하나가 되었다. 공무원인 교사와 경찰도 전화를 이용한 보이콧을 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수년 간 이 일을 해 왔지만, 그동안 조사를 받거나 출국금지를 당하기는커녕, 기업이나 정치인들로부터 항의 한 번 받아본 일이 없다. 이런 '불법행위'를 묵과하는 것을 보면 미국은 정말 문제가 많은 나라인 것 같다.  

 

현 한국정부와 보수언론은 '미국식'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도 한다'는 말은 자신들의 행위와 정책추진의 궁극적인 합리화 수단이었다. 의료민영화도 '미국식'으로, 신문방송 겸영도 '미국식'으로, 기업자율화도 '미국식'으로. 물론 이들이 말하는 '미국'은 제 입맛에 맞게 각색된 '가상의 나라'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처벌은 꼭 '한국식'을 선호한다. 기업의 분식회계나 비자금, 탈세 등의 중한 경제사범도 '경제발전 치적'을 고려해 한국식으로 용서하고, 정치인들의 뇌물수수나 성추행 혐의가 드러나도 '관례'를 생각해 한국식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하곤 했다.

 

검찰과 방통심의위는 '한국식'으로도 해결이 안 되자, 근거도 부족한 '미국식'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발등을 찍었다. 미국에서 언론의 광고주 불매운동이 '불법'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보수언론이 그동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되뇌었던 '수정헌법 제1조(First Amendment)' 때문이다.

 

이는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헌법조항으로, "의회는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거나 제약하는 어떤 법도 제정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헌법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 받는 경우는 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국가안보 목적이나 음란물, '악의(malice)'를 가지고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처럼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뿐이다.

 

아무리 검찰이나 방통심의위가 '미국사례'를 참고하려 해도 광고주 불매운동이나 < PD수첩 >의 보도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명백하다. 정운천 전 장관이 장관 시절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 PD수첩 >의 수사를 의뢰한 것은 코미디였다. 그러나 더 큰 코미디는 그 주장을 받아들여 실제로 수사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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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인규
광고주 불매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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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의 보도내용에 항의해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내용의 인터넷 게시물들. 각 광고주의 주소, 전화번호, 팩스번호는 물론, 담당자 개인의 이메일 주소와 직통전화번호까지 게시되어있다. 미국에서 이런 식의 광고주 불매운동은 일상적인 의사표현의 형식이다. 사진의 가장 오른쪽 게시물은 공화당 현직의원인 론 폴이 언론보도 내용에 불만을 품고 올려놓은 불매대상 광고주 명단이다. 위 사진에서 게시물 내용을 확대한 것이 아래 사진.
ⓒ 강인규
표현의 자유

 

4년 후를 생각하자

 

언론학자의 한 명으로 보건대, 현재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장 억압하는 세력은 검찰과 방통심의위다. 언론학 교수였던 박명진 방통심의위 위원장은 < PD수첩 > 제작진에게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지 않을 팁을 드릴까요? 공정성을 지키시면 됩니다."

 

다시 말해, 대통령에 의해 위촉된 9명의 심의위원의 눈에 '공정'해 보이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리저리 불려 다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언론학에서는 이런 발언을 '겁주기 효과(chilling effects)'를 통해 표현의 의지를 사전에 꺾는 심각한 침해행위로 본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사는 것 같다. 제 세상 만난 듯 정부의 편에 서서 칼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그들은 4년 후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려고 저러는 것일까? 이러고 또 다시 '뼈를 깎는…' 운운하며 비굴한 머리를 조아릴 것인가? 상식과 양심을 지키며 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뼈를 깎아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어쨌든 그것은 4년 후고, 우선 당장은 검찰과 방통심의위가 참조했다는 '미국사례'가 어떤 것이었는지 묻고 싶다. 그 때문에 좀 비싸더라도 국제전화를 걸어 물어볼 생각이다. 혹시 같은 궁금증이 드는 사람을 위해 전화번호를 공유하려고 한다. 이것은 내가 그동안 해온 '미국식' 버릇이기도 하다. 

 

방통심의위: (02) 3219-5114, 5333 (대표전화)

대검찰청: (02) 3480-2000 (대표전화)

 

이것은 '협박'이나 '보이콧' 용도가 아니라, '문의용'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 둔다. 하기야, 이것은 '2차 보이콧' 운동도 아니고, 자유시장경제를 위협하는 '기업불매'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계속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겁 없이 살던 내가 소심해지는 것을 보면, 세상이 바뀌기는 바뀐 모양이다. 남들이 말하듯,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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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전화를 이용한 보이콧은 시민사회의 몫만이 아니다. 사진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교사와 경찰의 '전화 보이콧' 관련 기사. 계약 내용에 불만을 품은 교사와 경찰 수백 명이 집단으로 '결근전화'를 하고 결근을 하는 것으로 항의 표시를 했다.
ⓒ <뉴욕타임스>
전화 보이콧

2008.08.07 17:53